오타르 이오셀리아니 감독의 프랑스 영화 "안녕, 나의 집"은 결코 안녕하지 못한 집이다.
"중국인 앞에서 음식 자랑 말고, 일본인 앞에서 와이프 자랑 말며, 영국인 앞에서 집 자랑하지 마라"는 농담같은 말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인 지는 모르겠으나 영국인들의 집 사랑은 대단한 것 같다.
집 가꾸기와 리모델링, 집 팔고 사기, 정원 꾸미는 법..등등 내겐 별로 구미 땡기지 않는 방송을 TV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니까.
내가 본 영국집들,
문 앞엔 한결같이 꽃화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대부분의 집이 붉은 벽돌과 흰색 벽이 어우러지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거의 모든 집집 창문엔 죄다 흰색 커튼이 쳐 있다는 거다. (어쩌다 아이보리색)
영국에서 살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은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예쁜 흰색 대문이 있는 붉은 벽돌 집 , 그리고 잔디밭이 있는 아담한 싸이즈의 영국 집!
그런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사실은, 출발하기 약 두 달 전쯤, 염치 불구하고 장차 근무할 학교 교장인 Rob에게 내가 살기 원하는 집의 조건을 말해버렸다.
(그 분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
"교장선생님, 우선 방이 두 세 개면 좋겠구요~, 두 아들이 다닐 학교가 가까운 곳이면서 다운타운이 걸어서 갈 만한 거리의 집이면 좋겠어요. 매일 장을 봐야 하니까요. 냉장고며 가구들이 빌트인 된 집이어야 하구요, 가격은 월 300~400
파운드 정도면..."
(당시 영국 파운드 가치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이 돈은 내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큰 돈이었음.)
통화 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집만큼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얻어야되겠다싶어 내가 묵을 인근 호텔 예약만 부탁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그에게서 내가 말한 조건의 집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최종 결정'을 묻는 그의 물음에 번거롭게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 그만 '예스'라고 해버렸다.
애초에 방 세 개 짜리 집을 구한 것이 화근이었다. 만일 방 두 개가 딸린 집을 렌트했다면 더 안전한 환경의 집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이 동네의 분위기는 어쩐지 황인종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미 계약은 체결됐고 모든 것이 종료된 상태다.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할 우리집 아닌 우리 집.
대문이 있는 현관까지 잔디밭이 쫙 깔린 집도 아니요,
대롱대롱 걸려있는 화분은 커녕 '문 열면 바로 거실'인 그런 허름한 집이었다.
아, 한 가지,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의 색은 흰색 이었다.
곧죽어도 2층 집이었고, 방 세 개가 2층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1층은 부엌과 작은 거실 그리고 코딱지만한 화장실이 차지했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집과 집 사이가 1m도 안 되는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terraced house)
나중에 알게 된 친구 미미의 집은 우리집과 정 반대 방향에 위치한 매우 평화롭게 보이는 동네에 있었으며, 흰 색 예쁜 대문이 달린 그리고 화장실도 부엌도 훨씬 아기자기한 튼튼하게 보이는 semi detached house 였다.
이미 모든 것은 물 건너간 상태. 계단은 삐걱거리고 보일러는 덜커덩 덜커덩 기찻길 옆 오막살이~
불안한 이 집에서 과연 토끼같은 두 아들과 겁많은 내가 무사히 잘 살 수 있을 지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 누구라도 우리집을 마음 먹고 부술라치면 10분 안에 와장창 부서질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로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영국인 남자 두 명이 쵸코렡 색 우리 집 대문을 탕탕탕 두드리기 시작했다.
"코코, 이번 주 금요일 7시에 연극 공연 보러 갈 수 있어?"
바로 그 금요일 저녁이었다.
<계속>
*그 당시 유행해서 자주 듣던 음악: White Flag /Dido
https://youtu.be/j-fWDrZSiZs
#안녕, 나의 집 #영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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