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영화, Blind / 2011.8.14
눈이 너무 나빠 거의 장님이나 다름 없었다.
비록 두 번의 눈수술 끝에 시력을 회복했지만 길 걷다가 앞 못보는 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바로 내 이야기다.
오늘 모처럼 오랜만에 괜찮은 한국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낯선 감독 안상훈, 진지하고 성실한 배우 김하늘 주연의 영화 <블라인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팽팽하게 관객의 시선을 잘 끌고가는 영화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어조로 말하던 의사(엑스트라)의 연기만 빼고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다.
특정 음악을 틀어놓고 범행을 저지르는 수법이나 주인공이 장님인 채 범인을 잡는 스토리는 예전의 외화 스릴러물에서 본 듯한 장면이지만 어쨋거나 카피를 하더라도 이 영화, 저 영화의 장면을 짜집기한 것이 들통나는 영화 <써니>같지 않게 자연스러웠고, <해운대>처럼 스토리가 어설프고 엉성하지 않은 완벽한 스릴러 영화였다. 음향 및 음악, 촬영 기술도 훌륭했고 특히 착하게 생긴 안내견 슬기의 등장은 보는 내내 가슴 졸여야 하는 관객의 가슴을 진정시켜주는 완충 역할을 하기에 적절 했다.
무서워 심장 다독거리며 보긴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좋은 영화였기에 뿌듯한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올 수 있었다. 엉터리로 만들어진 영화가 관객 천 만 운운할 때마다 속상한 데, 잘 만들어진 이 영화가 천 만 관객 동원되기를 바란다.
이하 펌.
거칠고 남성적이기보다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스릴러 [블라인드]. 그 중심엔 김하늘이 있다.
그녀는 영화 내내 일관된 톤으로 영화를 장악한다.
김하늘은 드러내듯 열연하거나 파격 변신을 통해 관객에게 어필하는 스타일의 배우는 아니다.
그녀는 대중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저만큼 가 있는,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배우다. 데뷔 시절 파리한 모습의 청순 가련 이미지였던 그녀는, 어느 순간 로맨틱 코미디의 경쾌한 히로인이 되었고, 호러의 스크림 퀸이었으며, 좀 더 성숙한 연애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최근엔 [7급 공무원]으로 액션에 입문했고, [온에어]에선 배우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한 톱 스타 오승아 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변화보다 [블라인드]의 '수아'는 김하늘에게 고통스럽고 긴장되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핸디캡을, '그러기에 더 섬세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바꾼 김하늘. 이 영화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연기엔, 신인 시절 부서질 것 같았지만 어느새 단단해진 13년차 배우의 내공이 드러난다.
글 l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구성 | 네이버영화
<블라인드>
감독 안상훈
출연 김하늘, 유승호, 조희봉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2011.08.10
기본정보 스릴러 | 한국 | 111분
홈페이지 http://www.blind2011.co.kr